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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방송] 고려인마을 한글문학기획전, 낯선 황무지에서 피어난 그리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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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방송] 고려인마을 한글문학기획전, 낯선 황무지에서 피어난 그리움의 노래
-시인 리 진의 삶과 시가 전하는 고국의 그리움과 귀향의 꿈
-'조국이여 난 당신을 잊은 적이 없소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여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전시가 한창이다. 바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낡은 기록물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의 거친 바람과 모래 속에서도 끝까지 한글을 붙잡아 지켜낸 고려인 지식인들의 뜨거운 숨결을 되살려내고 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사진 속에는 “언어를 잃으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신념이 깊게 배어 있다.
그 속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고려인 2세대 시인 리 진(1930~2002)은 함흥출신으로, 본명은 이경진이다. 평양 김일성대 영문학을 전공하고, 1951년 러시아로 유학 소련국립영화 예술대학 극작과를 졸업했다. 이후 김일성 우상화를 직시한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1957년 러시아로 망명했지만 귀화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살았다. 그리고 그는 한진과 더불어 고려인한글문학 2세대 대표주자가 되었다.
1960년, 고려인 한글 신문 《레닌기치》 문예면에 시 〈까라딸 강반에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을 때, 고려인 사회는 오랜만에 ‘자신들의 언어로 쓰인 시’가 주는 감격을 맛보았다.
전시장 한편에는 당시 지면이 그대로 걸려 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굵은 활자가 또렷하다.
“까라딸 강물 따라 멀리 흘러간 내 청춘,
돌아오지 못할 고향 산천을 품고 흐른다.”
짧은 두 줄 속에는 고향을 떠난 슬픔의 눈물, 낯선 땅에서 청춘을 다 바친 청년의 한숨, 그리고 평생 가슴속에 간직한 귀향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리 진의 시 세계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선다. 〈석양 속의 고향〉에서는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조국의 산하를 상상으로 그리며, 붉게 물든 석양을 그리움의 색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체념의 빛으로 담아냈다. 〈봄을 기다리며〉에서는 중앙아시아의 긴 겨울을 견디며 찾아올 봄을, 민족 재회와 자유의 소망에 비유했다.
그리고 또 하나,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이 있다. 바로 〈구부정 소나무〉다.
숲의 먼 끝에 한 그루 외따로/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로씨야 땅에서 보기 드문/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그 곁을 지날 때면 언제나/가만히 눈물을 머금는다/저도 몰래 주먹을 쥔다/가슴이 소리 없이 외친다/멀리서 아끼는 사랑이/얼마나 애틋한지 아느냐/길 떠난 아들을 잊지 마라/구부정 소나무의 내 나라
짧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이 시는, 낯선 땅에서 꿋꿋이 뿌리내린 고려인의 삶을 소나무 한 그루에 빗대어 담아냈다. 구부러졌지만 꺾이지 않는 소나무처럼, 그들의 삶 역시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리 진이 펜을 놓지 않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시는 고려인 사회의 자존심이었고, 억압 속에서도 민족의 혼을 지키는 등불이었다. 그는 2002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와 정신은 오늘날까지 고려인 사회와 후손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로 남아 있다.
김병학 관장은 “리 진 선생과 같은 문인들이 있었기에 고려인 사회의 한글과 정체성이 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며 “이번 전시가 우리 모두에게 언어와 역사, 그리고 정체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전에는 리 진을 비롯해 수많은 고려인 문인들의 육필 원고, 신문 지면, 시집, 그리고 중앙아시아 고려인 마을의 생활상을 담은 희귀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 안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서려 있어,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옮기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고 있다.
광복 80주년, 우리는 단순히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먼 이국땅에서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글로 노래한 시인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그 목소리는 오늘도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조국이여, 나는 당신을 잊은 적이 없소이다.”
*사진 설명: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여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전시가 한창이다. 바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다. / 사진 제공: 고려인마을
고려방송: 안엘레나(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마을) 기자
-시인 리 진의 삶과 시가 전하는 고국의 그리움과 귀향의 꿈
-'조국이여 난 당신을 잊은 적이 없소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여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전시가 한창이다. 바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낡은 기록물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의 거친 바람과 모래 속에서도 끝까지 한글을 붙잡아 지켜낸 고려인 지식인들의 뜨거운 숨결을 되살려내고 있다.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사진 속에는 “언어를 잃으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신념이 깊게 배어 있다.
그 속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고려인 2세대 시인 리 진(1930~2002)은 함흥출신으로, 본명은 이경진이다. 평양 김일성대 영문학을 전공하고, 1951년 러시아로 유학 소련국립영화 예술대학 극작과를 졸업했다. 이후 김일성 우상화를 직시한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1957년 러시아로 망명했지만 귀화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살았다. 그리고 그는 한진과 더불어 고려인한글문학 2세대 대표주자가 되었다.
1960년, 고려인 한글 신문 《레닌기치》 문예면에 시 〈까라딸 강반에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을 때, 고려인 사회는 오랜만에 ‘자신들의 언어로 쓰인 시’가 주는 감격을 맛보았다.
전시장 한편에는 당시 지면이 그대로 걸려 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굵은 활자가 또렷하다.
“까라딸 강물 따라 멀리 흘러간 내 청춘,
돌아오지 못할 고향 산천을 품고 흐른다.”
짧은 두 줄 속에는 고향을 떠난 슬픔의 눈물, 낯선 땅에서 청춘을 다 바친 청년의 한숨, 그리고 평생 가슴속에 간직한 귀향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리 진의 시 세계는 단순한 향수를 넘어선다. 〈석양 속의 고향〉에서는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조국의 산하를 상상으로 그리며, 붉게 물든 석양을 그리움의 색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체념의 빛으로 담아냈다. 〈봄을 기다리며〉에서는 중앙아시아의 긴 겨울을 견디며 찾아올 봄을, 민족 재회와 자유의 소망에 비유했다.
그리고 또 하나,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이 있다. 바로 〈구부정 소나무〉다.
숲의 먼 끝에 한 그루 외따로/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로씨야 땅에서 보기 드문/구부정 소나무가 서 있다/그 곁을 지날 때면 언제나/가만히 눈물을 머금는다/저도 몰래 주먹을 쥔다/가슴이 소리 없이 외친다/멀리서 아끼는 사랑이/얼마나 애틋한지 아느냐/길 떠난 아들을 잊지 마라/구부정 소나무의 내 나라
짧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이 시는, 낯선 땅에서 꿋꿋이 뿌리내린 고려인의 삶을 소나무 한 그루에 빗대어 담아냈다. 구부러졌지만 꺾이지 않는 소나무처럼, 그들의 삶 역시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품고 있었다.
리 진이 펜을 놓지 않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시는 고려인 사회의 자존심이었고, 억압 속에서도 민족의 혼을 지키는 등불이었다. 그는 2002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와 정신은 오늘날까지 고려인 사회와 후손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로 남아 있다.
김병학 관장은 “리 진 선생과 같은 문인들이 있었기에 고려인 사회의 한글과 정체성이 꺼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며 “이번 전시가 우리 모두에게 언어와 역사, 그리고 정체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전에는 리 진을 비롯해 수많은 고려인 문인들의 육필 원고, 신문 지면, 시집, 그리고 중앙아시아 고려인 마을의 생활상을 담은 희귀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 안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서려 있어,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옮기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고 있다.
광복 80주년, 우리는 단순히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먼 이국땅에서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글로 노래한 시인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그 목소리는 오늘도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조국이여, 나는 당신을 잊은 적이 없소이다.”
*사진 설명: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여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전시가 한창이다. 바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다. / 사진 제공: 고려인마을
고려방송: 안엘레나(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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